Shape of Humidity / 공기와 물의 모양 (2024-)
비가 오는 산속에서 피부에 눌어붙은 공기의 질감을 경험한 순간부터 시작된 작업이다. 나의 산행에서 습도는 중요한 요소이다. 흐린날의 습기는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변모하는 어둡고 짙은 회색의 어느 운무를 눈으로 관찰하며 흐린날의 자연을 경험하는 감각에 변화가 생겼다. 운무는 방향을 틀어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 삼킬것만 같았다. 시각과 촉감의 괴리는 두 감각을 서로 밀어내고 있었다. 다양한 자연대상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습도의 형태의 기록이며 이를 경험하는 시각과 촉감, 두 감각이 충돌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풍경을 바라본다는 것은 시각을 포함한 다양한 감각부터 경험과 기억, 그리고 복합적인 요소를 동반한다. 현장에서 생생히 보았던 장면을 시간이 지난 이후에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모두는 카메라로, 글로, 그림으로 기록한다. 이런 태도는 보았던 아름다운 것을 간직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습관이다. 여러 매체중에서 사진은 촬영자가 느낀 순간의 감정이 가장 적나라하게 반영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하면 장면을 쉽고 빠르게 포착이 가능하기에 나의 둔탁하고 큰 필름카메라 보다 현장에서 경험하는 순간의 감각이 비교적 도드라졌다. 하지만 컴퓨터 속 존재하는 이미지파일을 시간차를 두고 바라보면 대부분의 감각이 휘발되어 있었다. 시각적인 감각은 빠르게 사라졌다. 반면에 자연에서의 촉각적 경험은 오래도록 생생한 기억으로 존재했다. 그때부터 나는 보이지 않는 공기라는 물질에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는 공기의 상태를 비교적 쉽게 느낄수 있다. 무게와 질감, 촉감등 비가시적인 부분은 더욱 그렇다. 그것은 내가 자연 속으로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이유이고 일상속의 시각적인 자극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